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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블랙박스의 연금술과 그림자 금융의 유령들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미래의 안위를 걱정하는 평범한 개인들은 자산 시장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매일 유동성을 공급해준다. 각국 정부의 사회안전망 해체와 노동 시장의 영구적 불안정성 속에서 재테크와 금융 투자는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절대적인 계율이 되어있기…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미래의 안위를 걱정하는 평범한 개인들은 자산 시장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매일 유동성을 공급해준다. 각국 정부의 사회안전망 해체와 노동 시장의 영구적 불안정성 속에서 재테크와 금융 투자는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절대적인 계율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정식 은행 계좌를 넘어 글로벌 자산운용사의 인덱스 펀드, 사모펀드, 그리고 국경 없는 가상자산에 이르는 촘촘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며 자신이 시장 경제의 주체적 자본가로 기능하고 있다는 심리적 위안을 얻는다. 그러나 개인들이 풍요를 꿈꾸며 바치는 그 엄청난 자금의 궤적을 거시경제적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그 이면에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거대하고 위험한 블랙박스가 작동하고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우리가 시스템의 안정을 믿고 맡긴 자본은 정식 제도권 금융의 엄격한 자본 건전성 규제를 우회하는 그림자 금융(Shadow Banking)의 어두운 통로로 유입된다.

뿐만 아니라,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의 가면을 쓰고 탄생한 가상자산들은 각국 규제당국의 눈을 피해 하루에도 수십조 원씩 오가는 장외거래(OTC) 데스크의 무정부적 레버리지 투자의 땔감으로 전용되고 있다. 더욱 큰 문제가 되는 것은 규제가 없는 사각지대에서 소수 엘리트 자본가들이 벌이는 탐욕스러운 레버리지 파티의 비용이 결국 평범한 투자가 및 사회로 철저히 전가된다는 사실이다. 자본의 거품이 유지되는 동안에는 천문학적인 성과급이 그들만의 리그로 귀속되지만, 그 거품이 터지는 순간 발생하는 신용 경색과 자산 폭락의 칼날은 노동자의 일자리를 자르고, 임대주택의 월세를 폭등시키며, 필수 공공재의 이용료를 올리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내가 불리려고 했던 내 돈이 금융 시스템의 암흑지대를 거치며 나를 사냥하는 포식자로 돌변하는 구조적 현상은 결코 시장의 일시적인 오작동이 아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존재해 온 전통 대체송금시스템(IVTS)의 아날로그식 원리가 현대의 초고액 자산가들의 자금 관리 기구인 패밀리오피스(Family Office), 비밀투자클럽(Private Investment Club)과 결착하고, 가상자산 기술을 통해 하이테크 하왈라(High-Tech Hawala) 체제로 완전하게 고도화된 결과물이다.

현대 하이테크 그림자 금융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추적과 세금, 그리고 물리적 국경을 피해 가치를 이전해 온 전통 민간 대체송금시스템(IVTS, Informal Value Transfer Systems)의 본질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중동의 하왈라(Hawala), 중국의 페이추엔(Fei Chien), 인도의 후디(Hundi) 등으로 대표되는 이 시스템들의 핵심은 물리적인 현금의 이동 없이 오직 중개인 간의 신뢰와 장부상 상쇄(Netting)만으로 가치를 정산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중국 전통의 페이추엔(飛錢) 시스템을 보면, 송금인이 A 도시의 중개인에게 현금을 주면 특정 표식이나 영수증을 받는다. 수취인이 B 도시의 연계 중개인에게 이 증서를 제시하면 즉시 현금을 지급받는다. 이때 A 도시와 B 도시 사이에는 단 1원의 현금도 이동하지 않는다. 두 중개인은 추후 국가 간 무역대금의 인보이스를 조작하거나 서로의 채권, 채무를 장부상에서 상쇄(Netting)하는 방식으로 정산한다.

남아시아 전역에서 활용되는 인도의 후디(Hundi) 역시 사설 신용장(Bill of Exchange) 형태의 유통 방식을 통해 정식 은행의 여신 심사와 지급준비율 통제를 완벽히 우회하며 자금을 융통해 왔다. 이 전통적 시스템들은 철저히 혈연, 지연, 그리고 오랜 무역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폐쇄적 지배구조로 운영된다. 이 때문에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가 도입한 강력한 실소유주규제나 실소유주(UBO) 추적 가이드라인은 이 네트워크 앞에서 무기력 해진다. 이러한 아날로그식 IVTS 유전자는 현대 금융공학과 블록체인을 만나면서 전 세계 지하경제의 뼈대를 이루는 핵심 인프라로 완벽하게 진화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제도권 은행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자, 자본은 규제의 장벽을 넘어 더 깊고 어두운 대안 통로를 찾아냈다. 그 종착지가 바로 가상자산 장외거래(OTC) 시장과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의 결합이다. 가상자산 OTC 데스크는 정식 거래소의 공개된 호가창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거대 투자자들과 기관들이 사설 네트워크를 통해 은밀하게 거액의 자산을 교환하는 거대한 블랙박스형의 유동성 저수지와 같은 기능을 한다. 이들은 전통 하왈라의 상쇄 장부 원리를 블록체인 공간에 그대로 구현하며 무정부적 그림자 은행으로 기능한다. 자본 유출 통제가 극심한 국가의 자산가가 자산을 해외로 밀반출 할 때, 현지 OTC 브로커에게 현금을 지급한다. 브로커는 블록체인상에서 스테이블코인(USDT 등)을 다른 국가의 연계 브로커에게 전송하고, 그 국가의 브로커는 이를 현지 법정화폐로 인출하여 자산가의 해외 계좌로 입금한다. 이 과정에서 물리적인 국경을 넘은 화폐의 이동 흔적은 정식 국제결제시스템(SWIFT)에 전혀 남지 않는다. 국외로의 외화 유출입 흔적은 나타나지 않고, 오직 각 거점 OTC 브로커들의 내부 장부상 상쇄로만 정산이 완료된다.

더욱 치명적인 위험은 이 시장이 공급하는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활용되는 신용에 있다. 대형 가상자산 OTC 데스크들은 제도권 투자은행의 프라임 브로커리지(Prime Brokerage)처럼 투자자에게 자산을 담보로 받고 자체 장부상에서 막대한 사설 신용 공여(Credit Line)를 일으켜 준다. 이는 중앙은행의 통제를 받지 않는 무제한의 그림자 신용 창출이다. 만약 이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레버리지 실패로 인한 연쇄 부도가 발생하여 디페깅(De-pegging) 사태가 발생할 경우에는 발행사들은 담보로 받은 제도권 시장의 미국 국채와 기업어음(CP)을 동시다발적으로 투매(Fire-sale)해야만 한다. 디지털 지하경제의 방종이 실물 경제와 제도권 금융 시장 전체를 마비시키는 시한폭탄의 도화선이 되는 메커니즘이다.

이 하이테크 IVTS 체계를 최종적으로 소비하고 구동하는 주체는 전 세계 초고액 자산가들의 자산을 관리하는 패밀리오피스(Family Office)와 소수 엘리트들이 폐쇄적이고 은밀하게 활동하는 비밀투자클럽(Private Investment Club)이다. 이들은 일반 공모 펀드나 금융 기관과 달리 공시 의무가 극히 제한적이라는 특권을 활용하여,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무력화하는 고도화된 역외 금융 공학을 활용한다. 이들이 자금을 은닉하고 유동화하는 대표적인 방식은 전통 IVTS의 핵심 원리인 무역기반 자금세탁(TBML, Trade-Based Money Laundering)의 변종들이다. 비밀투자클럽이 소유한 역외 페이퍼 컴퍼니 간에 고가 미술품, 희귀 원자재, 혹은 무형자산 라이선스의 가치를 인위적으로 수십 배 조작하여 인보이스를 청구(Over-Invoicing)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천문학적인 자금이 무역 대금으로 둔갑하여 국경을 넘어 조세회피처의 독립 신탁구조로 흘러 들어간다. 자산의 법적 소유권(Legal Ownership)과 실질적 수익권(Beneficial Ownership)을 다단계로 분리해 두었기 때문에 국가 세무 당국의 포렌식 추적 시스템은 법적 관할권(Jurisdiction)의 장벽을 넘지 못한다. 이 지하경제 안에서는 마약 카르텔의 불법 자금과 초고액 자산가들의 탈세 목적 자금이 하나의 그림자 금융 풀(Pool) 안에서 서로의 유동성을 상쇄해 주는 청산 스왑(Clearing Swap) 형태로 섞인다. 불법 자금은 합법적인 투자자금의 형태를 갖추는 신용 세탁을 달성하고, 자산가의 은닉 자금은 추적이 불가능 해진다. 세탁된 자금은 제도권의 사모신용펀드(Private Credit), 고급 부동산 시장, 그리고 헤지펀드의 레포(Repo) 시장으로 유입되어 실물 자산 가격을 폭등시키고 거시경제의 통화 정책을 무력화시킨다. 자본의 주인이 자본의 통제권을 상실하고 자본의 노예로 전락하는 구조의 배후에는 이와 같은 지하경제의 카르텔이 자리 잡고 있다.

이와 같이 거대한 약탈 체제가 유지될 수 있는 근본적인 배경에는 자본을 감시해야 할 정부 행정 권력과 금융 엘리트 간의 추악한 유착관계가 존재한다. 월가의 투자은행 및 거대 자산운용사의 고위 임원들이 재무부와 금융감독기구의 수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공직을 마친 후에는 다시 자산운용사에서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는 고문으로 복귀하는 회전문 인사(Revolving Door)는 자본이 국가의 정책 권력을 포획하는 보편화된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정부의 행정 권력은 자본을 규제하는 파수꾼이 아니라 이들의 사각지대를 방치하고 대변하는 해결사로 전락한다. 이와 같은 관계는 금융 위기 때마다 나타나는 정부의 구제금융(Bailout)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림자 금융의 엘리트들은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위험한 파티를 즐기며 이익을 사유화하고,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대마불사(Too Big to Fail)의 공포를 유포하며 국가 권력을 압박한다.

정부는 국민의 혈세와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 이들의 부실을 청산해 준다. 자본주의의 기본 원칙인 투자 책임의 원칙은 오직 힘없는 사회로 전가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정부가 자본의 파산을 막기 위해 쏟아붓는 천문학적인 유동성은 결국 화폐 가치 하락과 초인플레이션이라는 가혹한 형태로 대중에게 전가된다. 자산이 부족한 가계는 가만히 앉아서 자산 증발을 경험하는 반면, 정부가 제공한 안전망 위에서 구제된 자본 엘리트들은 다시 한번 폭등하는 자산 시장의 레버리지를 독점한다. 국가는 더 이상 공동체를 보호하는 방패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그림자 자본의 영속성을 보장하고 양극화를 가중시키는 공범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돈은 본래 인간의 필요와 교환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수단이자 매개체였다. 그러나 하이테크 IVTS와 그림자 금융, 그리고 패밀리오피스가 결탁하여 구축한 현대 지하경제 체제 속에서 자본은 스스로 생명과 권력을 얻어 주인을 핍박하는 잔혹한 통치자가 되었다. 수많은 개인이 불안을 이겨내고 풍요를 꿈꾸며 금융 시장에 바치는 투자금은 베일 속에서 그들만의 리그를 공고히 다지는 실탄으로 소모된 채 주인의 목을 겨누는 사슬로 돌아온다. 이것이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군중들이 겪고 있는 실상이다. (글쓴이 : ㈜프론티어 M&A 회장 성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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